프라이베르크 전투는 1762년 10월 29일 벌어진 전투로 7년 전쟁의 주요 전투 중 마지막으로 벌어졌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남동생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공은 비록 2진 부대와 비정규 대대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있었지만 안드라스 하디크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의 지원을 받고 있는 스톨베르크 공이 지휘하는 제국군에 대해 공세를 펼치기로 결심하였다.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군은 고지대의 정상에 위치한 보루 뒤로부터 참호를 파기 시작하여 프라이베르크의 서쪽까지 이어나갔다. 이러한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군의 위치는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적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군의 후방에는 물데 강이 있었는데, 이 강에 놓여있는 다리를 통해 마을 동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10월 28일 하인리히 공과 그의 부관들은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군의 배치를 정찰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러한 프로이센군의 움직임은 고지대 앞에 펼쳐진 숲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오스트리아군의 경무장 부대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러나 하인리히는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 연합군의 배치를 묘사한 정확한 그림을 그려 충분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하인리히는 캄피텔리 휘하의 오스트리아군의 주력이 고지대에서 마을의 서남쪽으로부터 적이 진군하는 것을 저지하는 동안 제국군은 서쪽으로부터 프라이베르크로 진군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확실할 수 있었다. 하인리히는 또 비록 오스트리아군과 제국군이 전면에 몇 개의 임시 보루와 울타리를 건설하여 방어를 강화하기는 했지만, 제국군이 어떤 '위험한 처지'에 처해 이동함에 따라 오스트리아 - 신성로마제국군의 좌익을 지킬만한 충분한 병력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였다. 이는 소규모 분견대를 이용하여 오스트리아군을 서남쪽에 묶어두고 주력군을 이끌고 측면공격을 감행하여 오스트리아군에 비해 약한 제국군을 격파하는 계획을 세운 하인리히 공에게 너무나도 매력적인 타겟이었다…
Wikipedia https://ko.wikipedia.org/wiki/프라이베르크_전투
주소 09600, Germany
좌표 50°54'46.879" N 13°18'4.558" E